훈민정음 보급 혁명, 20대 인재들과 손잡은 세종 이도

 

김슬옹(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훈민정음가치연구소 소장, 한국외대 객원교수)

 

세종은 144312, 47세 때 훈민정음 창제를 마무리하자 마음이 바빠졌다. 얼른 백성들의 눈을 뜨게 해야 했다. 일단 하급 관리들인 서리들을 가르쳐야 빨리 퍼지리라 생각하고 그들을 왕자들을 시켜 가르치게 했다. 양반들도 가르쳐야 했으므로 양반들이 자주 보는 운서의 한자 발음을 훈민정음으로 적게 했다. 훈민정음 창제를 신하들에게 알린 지 채 두 달이 안 돼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대감을 비롯한 원로 대신 7명의 반대상소(1444.2.20.)가 올라왔다. 그들을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설득도 해 보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양반들도 설득하고 백성들한테 왜 훈민정음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를 알리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바로 1446년에 간행 반포한 훈민정음해례본이었다.

이 책 집필을 위해 원로 대신들보다 젊은 인재들을 끌어모으기로 했다. 세종의 해례본 저술을 도와준 공저자 8명 가운데 40대의 정인지와 30대의 최항을 제외한 6(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모두 20대였다.

해례본은 문자 혁명을 제대로 성공시키는, 보급 혁명의 지렛대이자 징검다리가 되었다. 이 책이 나오자 양반들의 반대 상소는 단 한 건도 없었고, 훈민정음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훈민정음 해례본 한문본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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